두 번째 잡년행진(슬럿워크코리아)를 준비하며: 강간당해도 ‘싼’ 여자는 없다

공무원노조 신문 34호(2012.7.24) 2면 하단

34호최종 (pdf 파일 다운로드)

 

 

두 번째 잡년행진(슬럿워크코리아)를 준비하며:

강간당해도 ‘싼’ 여자는 없다

칠월 (잡년행동 활동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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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캐나다의 마이클 생귀네티라는 경찰관은 돌연 전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 그 해 1월 토론토 요크대의 ‘안전교육’강연에서 “여자들이 성폭행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women should avoid dressing like sluts.”고 한 생귀네티의 발언에 분노한 여성들 3천여 명이 모여 “야한 옷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시위의 이름은 “슬럿워크Slut Walk”. ‘창녀’처럼 입어도, 하물며 실제로 성판매를 하고 있더라도 성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려 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 “일상복을 입고와도 된다.”는 주최 측의 안내에도 많은 여성들은 속옷에 가까운 차림으로 나타나 “강간당하지 않도록 가르치지 말고,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내 옷은 ‘yes’가 아니다” “만지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마이클 생귀네티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즉각 사과하였고 경찰 당국은 생귀네티를 징계하였지만 분노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슬럿워크는 2011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페미니즘 (대중)운동”이라고 평가되고 있으며, 1년이 지난 2012년 토론토에서는 최초 슬럿워크 시위가 있었던 4월 3일을 “International Day Against Victim-Blaming”으로 지정하는 등 국가 및 지역 별로 다변화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7월초까지 보스턴, 시애틀 등 북미 주요 도시와 런던, 시드니, 멕시코시티까지 각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 60여 개 도시로 시위가 이어졌고, 아시아에도 2011년 7월 16일 한국의 “잡년행진(슬럿워크 코리아)”을 시작으로 델리, 싱가폴 등으로 슬럿워크 열풍이 불고 있다. 생귀네티의 발언이 성폭력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피해자탓하기’이자 여성에 대한 ‘혐오발화’임은 명백하지만, 발화자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 징계하고 사과 받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많지 않다는 확신이 많은 여성들을 움직이도록 하였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슬럿워크(‘잡년행진’으로 번역) 시위를 촉발한 계기는 ‘고대 의대 집단성추행사건’ 가해자들의 행태가 사회적으로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 학생 3명이 같은 과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이를 촬영하여 피해자로부터 고발당했는데, 가해자들은 학내에 ‘평소 피해자의 행실이 문란했다.’ ‘남학생들과 술을 마시자고 먼저 제안했다’라는 전단지를 돌렸다. 피해자의 성적 ‘방종’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형을 경감토록 하는 객관적-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상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비슷한 시기, 판사의 모욕에 의해 노래방 도우미가 재판 과정 중 자살한 사건도 한국판 슬럿워크의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피해여성은 유서에서 “중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노래방에서 일하는 너 같은 여자가 왜 앞길이 창창한 회사원(가해자 남성)의 인생을 망치려 하냐.”는 판사의 법정에서의 언사,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 등에 분노와 비애를 느꼈으며 반드시 판사에게 복수 해 달라는 말을 유서로 남겼다.

위 사건들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 여성에게 “무슨 옷 입고 있었는데? 그 치마 너무 짧은 거 아냐?” “밤늦게 취해서 다닌 네가 경솔했다. 네 잘못도 있다.”라는 질책을 하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다. 이렇게 성폭력을 둘러 싼 피해자 비난의 담론들은 형태를 달리하여 수많은 버전으로 존재한다. 성당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이 드러나는 것은 선정적이라며 베일을 씌우는 (남성이 성적으로 흥분하는 것이 문제라면 가려야 할 것은 그의 바지일 것인데도) 전통에서부터,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계단을 오를 때는 책이나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려야 매너 있는 것이라는 짐짓 점잖은 훈수까지. 이같은 맥락에서

생귀네티가 “강간을 피하려면 매춘부처럼 입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규범 밖의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사회적/법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이며, 그의 발언은 개인의 편견만일 뿐 아니라 경찰과 법, 그리고 ‘지배적 규범’이 그의 발언을 매개로 드러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단순히 발화자-청자 간의 문제로 보는 것은 이러한 장면을 매우 개인적인 층위의 것으로 만들어 축소해 버린다. 고발되고 시정되어야 할 것은 여성에 대한 창녀-성녀라는 이분법적 성별 위계, 섹슈얼리티 통제, 남성 성욕 신화 등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적 퇴적물들, 그리고 퇴적물들이 형성하는 지형이지, 2차가해자 혹은 모욕적인 댓글뿐이 아니다. 이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슬럿워크는, 많은 여성운동이 그러하듯, ‘생귀네티’ 혹은 가해자라는 개인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한 캠페인이다.

이처럼 법제화 혹은 특정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페미니즘의 요구는, 성적 이분법과 섹슈얼리티 통제라는 성차별적 사고틀 속에서 무리 없이 살아 온 자신을 범죄의 공모자로 지적하기 때문에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때문에 야한 옷차림-성범죄라는 연쇄를 깨뜨리자는 슬럿워크의 메시지를 완전히 반대로 이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슬럿워크 시위에 대해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본다는.”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가 선정적으로 재현하는 슬럿워크 시위 참가자들의 ‘노출’ 그리고 ‘만지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며 그 거부의 메시지가 주는 인지부조화, 그 불편함이 향하는 것이 자신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그는 주범은 아닐지라도 공모자이며, 어쩌면 가장 직접적으로 그 메시지가 닿아야 할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28일, 탑골공원에서 다시 한 번 ‘잡년’들은 행진한다. 이 행진이 ‘어떤 여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딸에게 동생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당부하고 불안한 맘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던 당신, 늦은 시간까지 초조하게 잠 못 이루며 늦게 들어오는 그들에게 화를 내던 당신, 바로 그들의 손을 잡고 나와서 함께 외치자. 그들을 단속 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게 요구하자. 어떤 누구도 타인을 ‘강간해서는 안 된다’고 ‘강간당해도 될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간당하지 않도록 가르치지 말고,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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