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메이데이 총파업 GENERAL STRIKE 후기

처음 총파업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막막했다. ‘프레카리아트의 총파업’ 이라는 구호 아래 여성이 설 공간이 있는가. 그러나 곧 여성이 ‘프레카리아트 중의 프레카리아트’ 주체임을 깨닫자 이후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경쟁이 미덕이 되어버린 21세기 사회에서 숙명처럼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장중심 원리에 의해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을’ 뿐 아니라 ‘유래 깊은 가부장 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나 새롭게 형성한 깊은 빈곤과 고통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여성성 수행 노동자’ 로서의 임무를 파업하기로 다짐했다. 2011년 7월 16일 광화문 한복판에서의 뜨거운 퍼레이드의 기억을 되살려 동참을 선언한 총파업 주체의 하나가 되어 걷기로 마음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어떤 액션이나 무브먼트보다 이슈 메이킹에 파괴적인 힘을 보여온 잡년행동이었기에 이번 퍼레이드에도 우리가 함께 함으로써 보다 더 화려하게, 보다 더 강하게 연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우리가 함께 함으로써 총파업은 ‘젠더 이슈’ 를 껴안은 더욱 색이 다양한 행동이 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우리는 ‘젠더 수행 파업’ ‘강요된 꾸미기 노동 파업’ ‘몰인격적 성적 대상화 거부’ 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우리가 총파업 동참을 선언하고 No Bra, No Make-up 퍼포먼스를 제안하자마자 어김없이 기존 미디어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들은 우리들의 행진에 철저히 그들만의 시각으로 접근하여 마치 무기와도 같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의 행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시선 – 좋은 떡밥을 물고자 하는 미디어의 시선과 명동 한복판을 행진할 때 쏟아진 비난의 시선 – 과의 싸움이었다. 그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달려들어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가장 선정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우리는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고 주체임을 선언하기 위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셔터가 터질 때 마다 맥락 없는 대상화에 의해 소비될 것만 같은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자기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의 검열 거부, 브래지어나 화장 등 여성성을 상징하는 그 어떤 방어 도구(?!) 없이 그대로 맨 살을 드러내야 하는 용기, 그들의 시선 앞에 보다 더 당당해지기 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한낮의 뜨거운 거리 위를 내딛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용기의 근원은 우리가 점이 아닌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였기에 가능했다. 다양한 색과 결을 가진 사람들의 외침이 어우러진 커다란 덩어리의 하나였기에 가능했다. 총파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잡년행동’ 이라는 이름에 실린 무게를 확인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잡년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듯, 총파업 대오의 발걸음 또한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기를!

2012년 6월 6일, 잡년 ㅎㅇ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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