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영화제 라운드테이블 발표원고

2012년 4월 22일 일요일 저녁 7시 신촌 아트레온 소극장, 제 14회 국제여성영화제 라운드테이블에서 ‘여성, 미디어, 정치’라는 주제로 슬럿워크코리아의 칠월이 발표(하려고 준비)했던 내용 공유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게 아쉽지만,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잡년행동의 역사도 제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Q는 여성영화제에서 슬럿워크에 미리 주신 질문, A는 그에 대한 대답입니다. 2번과 3번 질문은 영화에 관련한 질문들이라 잡년행동은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토론거리를 미리 적은거라 논리적으로 완결된 글은 아닙니다만 이런 아이디어 스케치도 공유하면 추후 논의에 1g이라도 도움이 되겠지요..

와 주시고 자기소개때 함께 일어나 인사 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4.23
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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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
‘여성들이 카메라와 소셜네트워크, 인터넷 공간 등에서 어떻게 정치적 의제에 결합하고 있는가’에 대해 짧은 발제를 진행. (각 패널 10분 정도)

A.
먼저, 활동을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된 신생 조직으로서 이런 큰 자리에 나오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실 성적 자기결정권과 반성폭력운동, 정치적인 장에서의 여성의 참여를 둘러싼 문제라는 우리의 메시지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전한 밤길’을 요구했던 ‘달빛시위’, 혹은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을 지적하고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갖은 위협에 시달렸던 ‘100인위 사건’, 그리고 학제로서의 여성학을 연구하고 교육하시는 교수님 같은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실 속에서 슬럿워크가 생기기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마 그러한 다른 여성운동단체가 아니라 슬럿워크를 오늘 이 자리에 불러 주신 것은 ‘뉴미디어’로서의 ‘SNS’의 역할에 주목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에 중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하겠다.

토론토 슬럿워크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이와 유사한 형식의 ‘노출’시위가 있었던 것은 2011년 6월 14일 고려대 정문에서의 ‘고모씨’의 1인시위로 보고 있다. 시위하기 위해서 노출을 한 것이 아니라, 노출 그 자체가 갖는 함의와 일원적 코딩에 문제를 제기한 방식의 시위 말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1480

작년 여름의 한국은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여성 연예인의 스폰서-자살 사건, 성폭력피해자 노래방도우미가 판사의 모욕으로 자살한 사건, 아동성폭력 범죄에 대한 미약한 처벌 등, 성범죄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명동에서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철거가 일어나면서, ‘마리’라는 카페에 트위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는 홍대 재개발 지역의 ‘두리반’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 이를 다 설명하기는 시간상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재개발-강제철거-폭력진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슬럿워크가 준비되었다는 것은 한국 잡년행진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마리’에서 점거농성을 하던 사람 중 “도둑괭이”라는 분이 최초로 트위터에서 “우리나라도 슬럿워크 하자!”제안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하면서 집회신고를 하고 준비를 해 나갔다. 마리가 원래 투쟁 현장이라 현수막이나 스프레이 등의 도구가 있었고, 트위터를 보고 사람들이 재료나 김밥 등을 사 오면서 운동이 매일매일 지속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미술팀’ ‘퍼포먼스 안무팀’등으로 역할분담도 생겨났다. 트위터에서 ‘나 지금 마리에서 잡년행진 준비중’하고 올리면 그 사람의 친구가 보고 왔다가 코 꿰여서 하는 식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여자들만 모인것도 아니고, 정말 다양한 성별과 정체성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당일도 신났지만, 트위터에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얼굴도 모르지만 공감 폭발하고, 먹고 자면서 한 달 정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신났다.

메시지도 정말 다양했다. “야하게 입었다고 해서 강간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 아래, “옷은 양념이 아니다, 여자는 음식이 아니다” “커밍아웃했다고 해서 너랑 자고싶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취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걸 포괄하는, “착한 여자는 천국가지만, 잡년은 어디든 간다”라는. 가부장제가 부여하는 ‘성모 마리아’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아가 그러한 성녀/창녀 이분법 자체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 이런 의미에서 “썅년행진”이라고 하자는 말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다양성을 담자는 의미에서 “잡년행진”이 되었다. 이 이름을 지은 것은 구로라는 남성 참가잔데, 아나키운동을 하는 분이다.

7월 16일 행사 당일에는 먼저 광화문에서 행진하고 퍼포먼스를 한 후, 홍대로 이동해서 공연을 했다. 참가자를 대략 2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기자가 100명 정도 왔던 것 같다. 정말 사진을 엄청나게 찍었다. 플래시가 계속 번쩍거렸다. 참가자가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다들 하는 말이 “시위 현장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온 것은 태어나 처음 본다”고 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렇게 열심히 달려오시며 사진 찍으시길래 순간 ‘숭고한 저널리즘’같은걸 느꼈다. 그래, 기자님들께서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나도 집에 가면 안되겠다, 고 생각도 했는데ㅎㅎ

그렇지만 기사가 나간 방식은 정말 형편없었다.
“누드 시위”, “옷 벗을 자유 요구하는 여성들”, “여성들 나체로 길거리 활보”등등. 댓글도 가관이었다. “줘도 안먹을 것들이 저러고 있으니 흉하다” “지나친 페미니즘이다. 한국에서 남자로 살기 너무 힘들다” 등등. 사실 별로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나 많은 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가 다 똑같다는 것이 놀라웠다. 엄청나게 일원적인 해석방식 아닌가. 머리에 딱 그것밖에 없는 거다. “여자가 옷을 벗는다? -> 예쁘게 봐 주세요”라는.

언론이나 어떤 외부의 평가가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야하게” 옷을 입고도 공포나 죄의식 없이 거리를 활보했던 경험이 너무나 해방적이어서 이 운동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말자는 결정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어졌다. 8월 이후에도 평가세미나 등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석하는 인원은 20명 정도였다. 그 때 ‘잡년행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행동하고 실천하자는 의미에서요.. 잡년행진의 핑크색 로고로 깃발 등을 만들어서 시위현장에 세웠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외국 슬럿워크의 경우는 ‘성노동운동’혹은 ‘Street harrassment’를 바꾸어 가는 운동을 하는데, 우리나라 맥락하고는 좀 달라서, 한국 잡년행동의 경우 성노동은 다루지 못했다.

9월 18일에 당시 여성가족부 앞에서 현대차 성희롱 부당해고 사건에 항의하는 농성 텐트가 있었는데, 이 분들을 위해서 저희가 ‘잡년난장’이라고, 공연과 퍼포먼스를 기획해서 나름대로 흥행을 했다. 당시 노래방 도우미나 장자연 등의 넋을 초혼하여 위로하는 굿판을 벌이고, 몇몇 인디밴드를 섭외해서 청계천에서 공연을 했고, 길에서 후원금을 모아서 농성장에 전달했고, 나름 평도 좋았고, ‘언니 멋져요 상’을 만들어서 농성하시는 분들께 시상도 했다. 현대차 성희롱 피해자 언니와 감정적으로 유대하면서 저희도 굉장히 임파워됐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상근자나 사무실이 있는 단체가 아니라서, 2학기가 시작하면서 대학생이 대부분인 우리들은 다들 기운도 좀 떨어지고, 여성이슈에 대해서 행동하자는 합의가 있긴 했지만, 구체적인 연대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슬럿워크는 이런거다’라는 진단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안에서 기존 운동권에 속해있던 개인들이 잡년행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강정마을이나 FTA 반대운동 같은것에 목소리를 냈고, 시위를 조직하거나 직접 거리에 나갔다. 그렇지만 트위터 사회 속에서는 저희를 보고 “니네가 제대로 하는게 뭐냐. 이룬게 뭐냐”라던가 “여성운동하는거 아니었나? 정체가 뭐냐”라는 반응이 생겼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나 FTA같은 정파성을 가지는 이슈들에 발언하는 것에 대한 대내외적 경계도 있었다.

중간중간 비정기적 회의나 개인적 차원의 술자리 “이태원 잡년 번개”등의 소소한 일들로 구성원들이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니네가 친목단체냐는 비판을 받는데, 참 웃긴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친목은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가 뭐 대의를 위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아니 대의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즐거운건데.

이런 상황에서, 12월 14일 천회 수요시위를 앞두고 정대협에 저희가 성금 전달을 하게 되었고, 제가 “여성주의 스터디”를 제안했고, 그때 전희경의 [오빠는 필요없다]를 읽으며 진보진영, 운동사회의 가부장성이, 잡년행동의 정치참여를 바라보는 일군의 시선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라는 자각을 했다. 여성학과 재학생으로서,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니네 왜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냐’고 했던 이유도 알았다. 언니들이 다 겪었던 고통이고, 그에 대한 사유나 해결 같은 것도 있는데 처음부터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그런 우려를 했던 것.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우리가 던졌던 메시지들이 ‘최초’는 아니라는 자각, 그리고 잡년행진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맥락화하는 지점에서 피로감을 느꼈던 친구들,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졌던 일부 남성참가자들이 조금씩 이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한 이후 오히려 새로운 멤버가 많이 들어오기도 했다. 인류학과 학부생이라던가 미술원 학부생이라던가, 본인의 전공과 여성주의를 함께 고민해왔던 친구들 말이다. 이런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잡년행동의 결이 또 새롭게 다양해 진 것 같아 긍정적이다. 인용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미술을 하는 ‘맥주’라는 분이 3.8때 피켓에다 구호 아니라 굉장히 예쁜 나무를 그렸다. ‘여기서 본인 포트폴리오 만들지 말라’는 말을 하며 웃었는데, 이번 발표 준비하면서 그런식으로 말 한 것을 굉장히 후회했다.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문장으로 적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예민하고, 해석을 위해 행위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것.

암튼, 슬슬 총선 열기가 뜨거워지는 국면에서 나꼼수 비키니-코피사건이 터졌다. 외국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B급” 정치비판 팟캐스트이다.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높은 수위의 비판과 해학, 기존 언론이 제공하지 않는 팩트들을 제공하면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중 한 사람이 감옥에 가게 되자 여성 청취자가 비키니를 입고 가슴에 “나와라 정봉주”라고 쓴 사진을 올렸고, 이에 대해 나꼼수 측과 팬덤에서 “죽인다” “코피조심”등으로 반응하면서 여성청취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동등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성적 대상으로 환원되는 느낌. 그들이 생각한 ‘동지’에 ‘여성’인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배신감. 그 동안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자각.

나꼼수팬덤에서는 자꾸 슬럿워크와 똑같은거 아니냐, 못생긴 여자들이 열폭하는거다. 저 여자는 “섹시한 동지”다, 그래서 너네닌 지금 이명박을 지지하는거냐는 말을 해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입장서를 내야한다는 요구를 느꼈다. 3.8 여성의 날 성명서에서 저희가 나꼼수사건에 반발하고 ‘통합진보당’의 ‘정진후’ 비례공천을 철회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성명서를 만들었고, 여성의 날 행사에도 비키니 시위를 했다. 우리의 구호는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 “섹시한 동지가 되기를 거부한다”였고, 무대에 올라서 성명서 내용의 발언도 했어요. 이 때 다른 여성단체 활동가분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았고, ‘페미니스트 선배’들의 평가에 대한 인정욕구가 뭔가 엄청나게 보상을 받으면서 새롭게 신나고 임파워링되는 경험을 했다.

그 날 이후 정진후 공천에 문제를 제기한 ‘민주노총 김OO 성폭력사건 피해생존자 지지모임’의 활동가분들이 성명서와 발언을 봤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해오셨고, 함께 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물론 저희 내부에서도 당연히 함께해야 할 일, 이라는 생각에 촛불집회 등에 나가고 트위터에서 관련 문제를 계속 알렸다. 카페가입 유도 등. 암튼 정진후 사퇴 운동, 진보신당에 성폭력 문제 해결 요구 운동을 하면서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 이명박을 심판해야 하는데 지금 니 발언의 배후는 뭐냐, 부터 정진후는 성폭력 가해자도 아닌데 왜 잡고 넘어지냐.. 라는 전형적인 비판들. [오빠는 필요없다] 혹은 “100인위 사건”에서 보여진 전형성이 똑같이 반복되더라. 노동조합이나 진보적 정권 내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지적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반응이 바로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응하지 않으면 “너님 프락치ㅇㅇ”

총선 이틀 전에 시청광장에서 ‘불법사찰 반대 촛불시위’가 있었고, 이 집회의 주최측 중 하나가 민노총이었기 때문에 지지모임에서는 그 앞에서 1인시위를 기획했어요. 그 때 고양이 가면(나꼼수지지자)를 비롯한 촛불집회 참여자 아줌마, 아저씨, 청년들에게, 오늘은 날이 아니니 일단 돌아가라, 고 위협을 당하다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맞았던거에요. 조선일보가 보냈냐, 일본이 보냈냐, 어디서 말대답이냐, 너같은 아들딸이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다 등등 다양한 이유를 가져다 대며 위협을 하다가 우발적인 폭력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4명이고 20명 정도가 우리를 둘러싸고 어깨나 머리를 때렸다. 카메라를 가진 랜디라는 친구가 특히 많이 맞았다. 조선일보 기자라면서.

이후 성명서 같은 것도 쓰지 못했는데, 사실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사실 진보진영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총선에서 통통연대와 진보신당, 녹생당이 다 지자마자 트위터상에서는 “20대 여성이 투표를 안했다”라는 통계적 근거가 전혀 없는 말들이 돌았다. 정말 어이가 없지 않나. 20대 개새끼론이 그렇게 돌았는데, 선거 지자마자 찾는 패배원인이 만만한 20대 여성이라니. 트위터 계정으로 또 신나게 싸웠다. 설령 20대 여성이 다 투표를 했다고 해서 지네를 찍을거라는 자신은 뭐냐, 뽑힐만한 당이었는지부터 돌아봐라..는 식으로. 왜 20대, 20대 여성 같은 ‘화풀이 대상’을 찾냐. 내부 문제 해결하지 않고 대안제시 없었던 야권의 문제가 더 크다, 는 식의 트윗을 몇 번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선이 남았다’며 또다시 문제를 외면하고들 있고.. 20대 탓 여전히 하고 있고..

여기까지가 지난 1년간 잡년행동이 해 온 활동을 간략히 정리한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돌아보면, 무언가를 ‘이뤘다’고 할 만한게 많지 않다. 트위터에서 어느 정도 우리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걸 보고 계속 합류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성폭력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피해자 행실을 탓한다.. 그런데 요 며칠 긍정적인 징후를 보고 있다. 트위터 멘션이 오는데, 우리에게 말을 거는 멘션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잡년행동이라는 계정이 있으니 팔로 해 보세요”라는 소개 트윗이다. 리플라이를 거슬러 보면, 소개 받은 사람이 뭔가 피해자의 옷차림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 트윗에 대해, 누군가 문제를 느끼고 우리를 알려주는거다.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팔로워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 한 사람을 공감시키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리트윗하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팔로워가 보고 리트윗 하는 것. 사실 누군가 ‘본다’는 행위 보다도 ‘리트윗하게 하는 힘’에 주목한다. 그 사람의 그 클릭 한 번이 실천이고,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는게 무엇인가, 나부터가 아닌가. 어쩌면, 내가 달라진다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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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
SNS, 인터넷 공간 등 디지털 공간에서의 페미니스트 액티비즘, 혹은 여성들의 정치적 액트를 둘러싼 가능성과 제반 문제들.
SNS에서는 진지한 토론이 불가능하다거나, 인터넷 공간에서의 여성혐오적 반응들로 알 수 있듯이 인터넷 공간의 젠더 적대적 특성들이 드러나는 부분들도 존재한다. 페미니즘적 액션의 공간으로서, 또한 정치 참여의 공간으로서 인터넷과 SNS는 어떤 공간일 수 있는가? 이러한 미디어에서 여성주의 액티비즘의 가능성과 문제의 지점들을 맥락화한다면?

A.
슬럿워크의 운영 방식을 먼저 짚어야 할 것 같다. 제가 슬럿워크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대표여서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 중 여성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잡년들은 교육문제, 환경문제, 아나키 운동, 신학운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개인들의 모임이다. 주로 흑백사진으로 시위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사진예술가도 있고 대학생의 경우 디자인, 미술, 인류학, 유학, 언론정보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지고 있다. 사실 슬럿워크 자체도 단순히 여성운동의 하나라고만 해석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세대)’와 ‘여성(젠더)’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하자센터나 성폭력사건피해자 지지모임과 횡적 연대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가 몇 명이냐고 묻는다면 참 대답하기 어렵다. “멤버쉽”이 아니라 “정관”이나 “QnA”에 동의한다면 당신도 잡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8 성명서 때 “연대서명”을 받아서 성명서 아래에 함께 인쇄하고 페이스북에도 리스트업했다. 그 분들 모두 잡년이라면 140여명이다. 위계가 없다. 어떤 종류의 발언권이 생긴다면 그것은 참여와 헌신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누가 나올 것인가도 고민이었다. 오늘 뿐 아니라 그 동안 언론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쉽게 응하지 못했다. 누군가 발언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까봐. represent/ation의 문제는 항상 고민한다.

조직운영에 있어서, 대표나 대변인을 뽑지 않고, 트위터와 이메일, 페이스북과 홈페이지 관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보통 목요일에 만났는데, 인원이 늘어나면서 스마트폰 채팅 기능인”마이피플”에서 상시채팅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일단 마플에서 대화하고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되면 누군가 트윗을 하기도 한다. 모든 자료를 이메일에서 공유하고, 개인이 이메일을 보낼때도 항상 슬럿워크 계정을 참조하여 발송하거나 포워드한다. 문자로 나눈 대화 등은 화면을 캡쳐해서 마플에서 공유한다. 모두가 트위터에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계정은 하나지만, 그건 공식입장이 아니고, 모든 트윗 뒤에 “잡년 칠월”, “잡년 레이나”등을 밝힌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좀 더 정제되고 간결하고 오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자는 거다. (말 잘못했다가 꼬투리 잡혀서 싸우고, 사과문 올리고 그러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잘은 모르겠지만 트위터는 그런 공간이 아닌 것 같다.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야 읽고 리트윗한다. 기업이나 이벤트 등의 ‘공식 입장’을 보는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그런 간결한 문장들을 굳이 리트윗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대기업의 마케팅성 트위터 계정이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본다. 물론 나는 미디어 분석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연세대 법대 총학생회, 이화여대 여성위원회 등 대학교 학생회에서 잡년행진 참여 한 것/할 것을 공약으로 삼거나 자체 문화제 주제로 삼는 것을 보았다. 굉장히 긍정적이다. 이를 우리측에 요청하거나 승인받을 필요도 없다. 내가 참여했다면, 이건 내운동이다. 슬럿워크 이후 대학교 수업에서 슬럿워크와 관련하여 레포트나 팀연구도 굉장히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담론을 생산하고, 논의의 장에 슬럿워크를 올리는 이런 활동 모두가 잡년행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6.8 혁명 이후 쏟아져 나온 담론들이 모두 ‘6.8 혁명’의 일부로, ’68현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도부’와 ‘배후’같은 것이 운동을 미리 계획하고 조직하여 역할을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플랫폼”이 형성되는 것. 학생회나 노조에 가입하고 어떤 체계 안에서 역할을 맡는게 아니라, 공감한다면, retweet하고 share함으로써 퍼뜨리는 것.

맘에 안 드는 트위터러는 언팔하면 되고, 맘에 드는 것은 리트윗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이게 바로 SNS의 자기만족적 측면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우리 세대에게 “자기 스페이스”가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 내 삶과는 너무나 괴리된 기존 미디어, 언론과는 달리, 타임라인을 직접 구성함으로써 지지받는 경험,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목소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경험이 거리로 나오게 한다. 슬럿워크의 경우 “성폭력은 가해자 탓이다”라는 큰 구호가 있었지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다양한 구호를 가지고 나왔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구호, 피켓을 들 ‘사람’을 모집한다’기 보다는 ‘구호’자체를 모집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운동이 이미 조직되어있어서 역할분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참여자가 직접 개입하는 것. 플랫폼으로서의 트위터, 혹은 플랫폼으로서의 슬럿워크.

(비판: 쉽고 공감되는 것만 알티하고 긴 글은 읽기 않는다.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접근성의 문제. 인터넷과 개인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언론을 통제해야 하는 과거의 접근성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달라진 것은 사실. 그러나 이조차도 사실 계급적 제한이 있다. 스마트폰을 소유함으로써 SNS에 실시간으로 접속하고 푸쉬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잡년행동에 실무진으로서 오프라인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대학생이고, 잉여 시간과 잉여 자원이 있었던 이들이다. 나도 아이폰을 사지 않았다면, 트위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운동하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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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5.
여성의 정치 참여, 미디어, 문화적 저항
1)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제반 문제들 : 나꼼수, 총선 이전 투표 독려 포스터 등에서 드러난 여성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 정치적 공간에서 젠더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존재해 보인다. 더욱이 최근 총선 이후 20대 여성들이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다.
2) 여성들의 정치화에 대한 이미지화 : 미디어가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혹은 여성들의 정치 참여 그 자체를 비하하는 이미지화를 보여 온 부분에 대해 슬럿워크가 비판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미디어가 여성의 정치참여를 바라보는 시선 및 이미지화와 이에 대한 슬럿 워크 코리아의 비판 및 대응은?

A.
총선 전 ‘투표독려 하이힐 포스터’를 가지고 트위터에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투표하는 여자가 개념녀”라는식의 문구와 빨간색 하이힐 사진의 투표독려포스터를 보고, 왕년의 미학자 출신인 어떤 정치평론가가 “예쁘다”고 하길래, (1)‘빨간하이힐-젊은여성(기존 관념에서는 섹시할 뿐인, 정치에는 ‘개념없는’여성)’이라는 상징을 비판 없이 차용한 것 (2)여성에게 ‘개념녀’혹은 ‘된장녀’등을 남성이 부여하겠다는 남성화자/남성진보논객의 오만한 자세에 대해 문제제기했는데, 그는 ‘취향을 강요하지 말라’면서 문제를 ‘표현의 자유’로 가져가더군. 미학한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모를리가 없는데 멍청한 척 하는건지 진짜 멍청한건지 구분이 안 되어서 논의는 중단했다. 동등한 논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근데 이후 그 사람은 트위터상에서 “진OO 약간 맛이 간 것 같다” “계정이 해킹당한 것 같다”라고 평가됐다. 메롱.

여성을 고정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은 나꼼수 코피-비키니 사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여성을 ‘수용’할 것인가. 낸시랭이 ‘또라이’쯤으로 취급되다가, 변희재를 엿먹이고 투표를 독려하자 개념녀로 등극했다. 사실은 “맘에 드는 말을 하는 이쁜애”인거다.

최근에도 슬럿워크 내부에서 논쟁이 있었다. 시위에서 가슴을 노출하는 것에 대해, ‘너무 가슴만 눈에 띄니 벗기 전에 신중하자’라는 지적에 대해, ‘내 큰 가슴을 부끄러움 없이 사랑하고 싶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과장하거나 혹은 숨기고 싶지 않다. 억압에 저항하려고 하는거지, 시위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몸을 억압하는 것은 반대다’라는. 조금 다른 층위지만, 이런 논의는 작년 처음 잡년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자기검열하지 말자는 것. 자기검열이란 사실 기존의 이분법 어딘가에 본인을 맞춘다는 거다. 그러기 싫다, 고 했다. 나는 나고, 보는 사람이 해석하기 편하도록 스스로를 기호화하지 않을거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서 여성은 항상 이분법적으로 위치지워진다. 성적으로 매력적이거나/매력이 없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내편/ 반대편 혹은 멍청이. 그리고 다양한 판별기준도 사실은 크게 두 줄로 줄세워지는거다. 가부장제속에서 승인되는 여자/승인할 수 없는 여자. 성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남성에게는 고분고분해야 하고, 대줘야 한다. 정치적으로 내 편이면 더할나위없다. 아마 나꼼수 비키니시위자, 낸시랭은 여기에 속하는걸거다. 이쁜데 반대편인 나경원은 ‘썅년’이고, 반대편인데 못생긴 전여옥은 ‘젖녀오크’다. 이쁜데 정치에 관심 없다. 뭐, 괜찮다 여자들이 그렇지 뭐. 여자는 밥하고 응원하면 된다. 정치는 이 오빠들이 할게.

지긋지긋하지 않나? 잡년행동도 이게 너무 지긋지긋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넨 뭐냐’라고 묻는다. 정치적으로 어느쪽이냐고 밝히라고 하고, 진보라고 하지만 성폭력사건에 문제제기하면 또 헷갈려한다. 성폭력하지 말라고, 노출시위하면 그래서 지금 예뻐보이고 싶은건지, 나랑 자줄건지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개인들의 모임인데다가 그 개인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애초에 변화를 정의하는 것도 이분법이라고 본다.

아마 이 지점에서 슬럿워크는 기존 언론에 다가가는데 끊임없이 실패하고, 잘못 보도되는 것 같다. 언론이란 것 자체가 의도(정해진메시지) 맞는 팩트(이미지)를 취사선택하는건데, 우리를 어느쪽에 배열할지 뭐 알수가 있나. 가슴을 내놓긴했는데 가슴에 “너랑 안자”라고 써있고 막. (성적 대상화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실 성적 대상화 즐긴다. 야하게 입고 클럽에서 춤출 때 내가 욕망’된다’는 것의 쾌감. 저 남/녀가 나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면, 나를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쾌감을 줄 것이다. 이런 기대가 있는 것 같다. 나 섹스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 너 창녀? 아님 걸레? 근데 정치적으로 내편? 조선일보? 그럴리가 없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이러면서 혼란에 빠지는거지.) 노동운동 계급해방운동 반성폭력운동 다 필요한 지점이지만 한쪽으로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운동의 지형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본다.

이건 기존 미디어(언론, 광고, 영화, 드라마)에서의 여성주의의 실패 혹은 난관이다. 문화운동하는 선배 페미니스트들도 잘 알고 있을거다. 여기서 다시 SNS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자기가 구성하는 언론. 1인 미디어, 뉴 미디어. 위계적이고 수직적 전달이 아니라 수평적 전달. 횡적 파동. 자발성, 같은 키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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