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필요없다> 잡년스터디 for 수요시위 첫날 자료

잡년행동 공부모임 첫 번째 스터디;“진보진영의 가부장성과 성폭력” 11.11.10 7PM @우리동네나무그늘
전희경,

는 소위 ‘운동권’이었던 저자가 2001년에 쓴 석사논문 『사회운동의 가부장성과 여성주의 정체성의 형성』을 다시 쓴 것으로, 16인의 여성 활동가의 인터뷰를 토대로 연구된 책 이다. 1부는 ‘운동권 막차’라고 불리는 90년대 학번 여성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에서 서서히 ‘여성운동’으로 관심과 활동 영역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느낀 여성주의 정체성의 자각, 진보 진영의 가부장성이 주는 무력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가 어떻게 그들에게 힘을 주었는가를 서술해 낸 장이다. 2부는 운동권/진보진영의 뿌리 깊은 가부장성의 작동기제를 5개 항목으로 분석하였으며, 가부장성과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저항은 어떤 벽에 부딪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본 발제문은 2부의 내용을 요약한 것 이다. 또한 3부의 ‘100인위원회 사건’은 바로 지금 여기, 2011년 각종 노동조합과 농성장, ‘마리’, ‘진보신당’과 ‘네오이마주(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평론집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10년 전(100인위가 결성된 것은 2000년 8월)의 가해자들의 작태(2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유언비어 유포와 성적 비난, 명예훼손이라는 역고소 등)는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가를 둘러볼 수 있기에 함께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2부 ‘진보운동’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1장 운동권 가부장제는 어떻게 작동해왔나
1. 위계적 성별 분업
– 성별분업 체계는 가부장제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란 축이며, 평등과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는 운동사회에서도 구성원들의 역할은 위계적 성별분업에 입각하여 할당됨(p.53). ‘조직 구조 자체에 내포된 성별분업’; 정책국이나 연대사업국(바깥일)은 남성활동가에게, 선전국, 교육국, 총무(안살림) 등은 여성활동가에게 할당(p.54). 여성 운동가들은 선전전이나 대자보 글씨쓰기 등 소모적인 업무에 투입되었고, 남성활동가에게는 정치 폭로물 내용쓰기를 가르치는 식(p.55).
– 여성간부는 다르다? 90년대 말 경제위기 등으로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여성 대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학생회와 사회운동 조직 속에서 여학생/여성활동가들이 간부를 맡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간부직의 업무 내용 자체가 변하는 현상(사무국장의 역할: 조직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정책을 결정->물품관리, 회계, 전화 연락 등)(p.58)
– 활동가 커플이 결혼하면 여성 활동가만 가사와 양육의 책임을 지고 사회운동 진영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는 과정(p.64)/ 음식 준비와 설거지 등의 “여자의 일”을 여성활동가의 업무로 지움(p.69~ “컵 깨기 행사”취지문 함께 읽기)

2. 군사화된 운동 문화
–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은 군부독재의 억압적 통치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잔혹한 탄압에 대한 ‘전투’가 됨(권인숙)(p.72) 시위대와 경찰 간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거리 투쟁의 경험은 운동권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정치적 경험이며, 화염병, 타겟팅(특정 건물 파괴) 등은 운동권 시위의 상징(p.73) 사회운동 집단의 군사화된 성격은 집회에서만 특정되지 않고 일상의 가치, 규범, 언어 속으로 확장. 자기소개 의례인 FM은 야전교범Field Manual을 뜻함.
– 운동가 속에서 운동가를 ‘전사’로 표현하는 사례 (p.75 가사 참조). ‘탄탄한 가슴’ ‘굵은 팔뚝’등 성인 남성의 신체력을 강조하는 사고 ->여성 활동가의 비가시화하고 ‘충분히’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좌절감(p.76)
– ‘의장님’‘옹립식’‘하늘 같은 선배’‘대중을 선도하는 지도자’등 엘리트주의/권위주의적인 언어(p.81)

3. 운동가는 남성이다-가치와 규범의 남성성
– 한국의 노동운동 담론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체계적으로 비가시화됨- 중공업/대기업/정규직 남성 노동자를 ‘표준적’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보이지도 기억되지도 않게 됨(p.85). 남성을 운동 주체의 대표자로 그리거나 노동자의 투쟁성을 남성적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강함, 능동성 등 우리사회에서 남성젠더에 부착된 내용들을 노동운동에 부여하는 남성 중심성은, ‘1천만 노동 형제’ ‘조국의 아들’ 등 민중가요, 선전물 어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음(p.86)
– 1999년 4월 ‘민주노총 포스터 사건’ / 2005년 3월 민노당과 민주노총 ‘비정규직 포스터 사건’ ;남성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를 재현한 노동운동 선전물
– ‘키워주기’와 비공식 네트워크, 술자리와 남성 연대. ‘서울대출신 엘리트’ ‘능력주의’로 포장된 견고한 벽. 성공하려면 여자 냄새를 지워라? 여자 후배에게 더 강경한 여자 선배. 여성의 여성 혐오(p.98) ‘명예남성 되기’ 그러나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완벽한 남성활동가가 되는 것은 이미 ‘미션 임파서블’

4. ’여성적인 것’의 타자화
– 통일의 꽃, 임수경 / 민주주의의 꽃, 김귀정 /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 – 유린당하는 연약한 여성으로서 가부정적 남성성과 민족의식을 자극하기 위해 이미지화 됨 ; 여성의 순결성
– 한국 사회에서의 성폭력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 ‘집안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서, 이를 이해하고 공분하기 위해서는 ‘네 여자친구/여동생/딸이 강간당했다고 생각 해 봐라’라는 말로 남성만을 차별적으로 운동주체화함
– ‘여대생’, 허영과 이기심의 대명사. ‘신여성’ ‘된장녀’ ‘명품가방 든 여자’; 맑스레닌주의를 내재화한 운동권이 소비를 여성과 연결하여 남성적이고 군사화된 운동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한 타자 생산;(p.112) 여성 운동가는 여성성을 거세하고 중성적이 되어야 한다? 여성활동가가 치마를 입지 않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은 중성화가 아니라 남성화로 보아야 한다.

5. 가족주의와 친밀성의 정치학
– 어머니 조국/투쟁하는 아들,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 위안부 할머니, 오빠(x)언니(x)/누나(o)형(o). 운동의 남성주체화를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무의식화. 이 때문에 남성활동가들은 형과 아우 사이의 남성 동맹이 생기지만, 여성 활동가들 사이에는 계보가 만들어지기 어려움
– ‘또 하나의 가족’인 운동권?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승무원 아가씨’ ‘식당/청소 어머니’들의 투쟁으로 언어화함으로써 누이/아내/어머니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이것이 그들의 노동운동이 더 존중 받기 위함이라고 함… 결과적으로 그들의 투쟁은 남성 생계부양자보다 중요성이 낮아 짐.

2장 여성의 입을 막은 것은
1. 이분법의 경계에서 말을 잃다
– 공/사 이분 ; 근대의 사회계약론자들이 말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적 계약’은 ‘성적 계약’을 은폐한다; 사적 영역에서는 정의, 평등, 민주주의, 인권 등 공적 영역의 원리가 아닌 사랑, 애정, 보살핌 등의 다른 원리가 통용되어야 한다는 통념. ‘훌륭한 운동가는 연애를 해도 티가 안 나야 한다’. 친밀한 관계가 운동사회의 공적 담론과 분리된 ‘사생활’로 격리될 때, 그 관계에서 일어난 여성 억압은 논외의 문제로 취급되거나 여성 활동가들이 ‘동지애’를 가지고 인내해야 할 문제로 여겨짐. (p.130)
그러나 공/사는 실제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돼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있을 뿐이며, 일상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구조적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문제와 사소한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둘 사이의 경계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중대한가?’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와 ‘사적인 문제’는 누가 정의하며 ‘중대한 문제’와 ‘사소한 문제’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분되는가다(p.134).
– 아군/적군 이분 ; 특정한 사안에 대해 상대와 의견이 다르면 ‘분열주의자’ ‘프락치’ ‘분파주의’ ‘부르주아적’ ‘비계급적’ ‘반민중적’이라는 언어로 비난함. 특히 페미니즘은 ‘제국주의적’이며 ‘서구적인것’으로 규정하여 침묵시킴.(p.136)
– 너무나 감정적이다? 너무 민감하다/예민하다? 자본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서 파업투쟁하는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p.137)
– 개인의 문제? 성차별과 남성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부만의/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됨. 집단 문화 속에서 개인은 ‘집안’ ‘민족’ ‘국민’ ‘학생’의 일부가 되는데, 이러한 문화 속에서 ‘개인적이다’라는 것은 항상 비난의 의미를 가짐. 남성과 여성은 집단에서 개인이 되는 것의 의미가 다름. 성인남성화-주체화-독립화 되는 것 과는 달리 여성이 개인을 드러낼 때는 항상 추방의 위협이 따름(p.142)

2. ‘전체 운동’ 속에 흡수되다
– 남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탓; 계급해방이 되면 여성문제도 해결된다. 우선은 자본과 싸우는 것이 먼저다. ‘전체운동’/’부문운동’…. 그러나 젠더와 계급, 인종은 독립된 범주들이 아니라 지배체제의 서로 다른 측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기원과 기능에서 모두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음. 주요 이슈와 부차 이슈를 나누는 것은 정통 맑스주의 이념에 의해 정당화되어온 것(p.152)

3장 ‘동지’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
1. 여성에게 적대적인 일상 문화
– ‘새내기 여학우들 노래나 들어 봅시다’ ‘예쁘다~!’ 노래방과 삐삐아줌마-1999년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들의 뒤풀이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 문제가 됨.
– 회의 자리에서 남성활동가가 여성 활동가에게 물리적 위협(고성, 물건집어던지기)을 가하는 것

2. 은폐와 묵인의 카르텔 – 운동사회 성폭력
– 동지가 아니라 여성이다, 라는 자각. 좌절감.
– 성폭력은 어디에나 있지만, 운동사회 내부에는 성폭력을 묵인, 은폐, 재생산하는 독특한 논리와 체계가 있다.
a) 대의를 위해 참아라(대의론). Ex)개혁당 수련회 성폭력사건-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
b) 위기에 처한 조직을 보위하기 위해 덮어야 한다(보위론). 성폭력 자체가 가해 남성의 지위를 악용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의 기여는 더 컸을 수 밖에 없고, 조직은 이를 논거로 가해자를 옹호한다.
c) 반대 세력이나 프락치의 음해다(음모론). 운동은 도덕성이 중요하다?

– 조직이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여성 운동가에게 미치는 영향 : 성폭력 사건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가해지기에, 성폭력의 문제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분석되어야 함. 1980년대의 ‘운동권’들이 ‘책보다는 사람을 통해’ 이념을 받아들였다고 자술하고, 이념을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동지애와 연대를 통해 운동에 투신한다고 느끼는 현상 속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과거가 부정되는 상황은 스스로를 운동권, 활동가로 정체화한 피해 여성에게 자아를 부정하는 충격을 주게 된다. ‘믿었던 사람’ ‘동지’의 행위를 지켜보는 피해자와 주변의 여성 활동가들은 결국 운동 자체에 대한 활동 의지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성폭력 피해 여성은 비밀을 지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처음 공론화되어서야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다른 피해자들이 드러난다. (p.179 사례읽기)

– 피해자는 조직을 나가고, 가해자는 조직을 옮기더라도 커리어를 유지하며 승진을 거듭한다. 남성에게는 성폭력 가해 사실이 ‘무능’을 의미하지 않기에 경력은 지속되고, 여성 활동가에게 성폭력 사건에 연루됨 ‘일을 제대로 못함’을 의미한다. 성 규범은 남/녀 활동가에게 다르게 적용된다.

3부 2장 “터질 것이 터졌다”ㅡ100인 위원회라는 사건
–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 ; 2000년 8월 조직,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이라는 토론회가 계기가 되어 결성되었다. 2001년 12월, 2001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7건의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 실명과 함께 공개하여 공론화 함으로써 엄청난 이슈와 반발을 일으켰다. 강간, 강간미수, 준강간, 준강제추행, 성추행 등 당시 현행법상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는 것과 격한 논쟁 직후 여성 활동가 눈앞에서 콘돔을 불며 조롱하는 행위, 스토킹, 친밀성과 신뢰를 악용한 성적 추근대기, 성관계 사실 유포, 협박과 애원이 뒤섞인 집요한 성관계 요구 등을 포함. 운동사회는 성역이 아니며 성별 권력관계가 관통하는 사회에서 욕망과 폭력이 연속선상에 있음을 드러냄.

– ‘진보’와 ‘대의’의 이름으로 은폐돼 은폐되어 온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반드시 공론화되고 이는 투쟁일 수 밖에 없으며, 또한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이 남는 사태, 성폭행이 문제가 아니라 피해사실 공개가 문제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사건을 ‘우조교 사건’이 아닌 ‘신교수 사건’ 등으로 부르는 운동과 맥을 함께함.

-100인위가 깨뜨린 3가지 금기
a) 침묵의 카르텔- 성폭력을 말해서는 안된다
b) 해결은 개인적으로,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c) 피해자는 가해자를 적대시하면 안되며 동지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교육하고 설득해야 한다

– 100인위의 실명공개는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 함으로써, 성폭력은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함께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사항임을 환기시켰다. 이전까지는 피해자와 조직 내 일부 여성활동가만이 반복적으로 소진되는 ‘일부/개인’의 문제로 인식.

– 100인위의 반성적 성찰 지점
a) ‘성폭력 개념의 확장’ : 이성애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해지는 부분들까지 성폭력이라고 언어화함으로써 여성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연약하고 민감한 순결주의자다, 라는 지적이 있었음. 그러나 피해자들에 있어 명백히 폭력으로 인식되는 문제가 남성활동가들에게는 ‘바람둥이의 연애사건’으로 보여지는 바로 그 지점, 그 경계를 문제삼아야 함.
b) 피해자 중심주의 : 여성이 경험과 관계에 대한 해석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함. 여성이 자신의 해석을 좀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돕고 공동체가 여성의 경험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성 환기
c) 사건 해결의 원칙을 만들어야 할 필요 : 운동사회의 독특한 조건 속에서 피해자의 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개별 여성 활동가들이 ‘해결사’로 소진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조직 전체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도록 ‘반성폭력 내규’등이 마련되어야 함

– ‘진보’의 의미를 독점한 ‘운동권’이 스스로를 ‘치외법권’지대로 설정하고 대의, 조직 보위, 동지애의 이름으로 성폭력을 은폐, 재생산해온 것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그간 당연시되어왔던 ‘진보’라는 범주가 여성 활동가들의 인권을 무시, 희생시키면서 구축된 남성의 경험, 해석, 세계관임을 드러내고자 함.(전희경, 『성폭력을 다시 쓴다』)
참고 : 가해자의 반격- 역고소 크리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 본 자료는 2009년 7월 14일, 제12기 성폭력전문상담원 심화교육에서 김지은님이 작성하신 발제문을 발췌한 것으로, 텍스트는 전희경, 『성폭력을 다시 쓴다』 중 입니다.

1. 명예훼손 역고소: 인권의 위계, 명예의 성별성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는 그동안 ‘개인의 문제’,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왔던 성폭력을 ‘공적인 사안’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
-공론화가 가해남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명예훼손 역고소’.
-이러한 ‘역고소’ 현상은 ‘성폭력 피해 말하기’를 범죄로 만듦으로써 성폭력 근절 노력을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것이고, 이때 피해여성의 성폭력 문제 해결 노력은 남성특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1) 역고소의 정치적 의미와 효과
-역고소가 하나의 경향으로 일반화되는 현상은 역고소가 정당하다는 즉, 성폭력 사실 공개가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는 사회전반의 문화적 각본 없이는 불가능.
-가해자의 역고소가 동반하는 의미 작용: 첫째,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한 강력한 부인(“고소까지 한 걸 보니 정말 결백한가 보다.”), 둘째,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환기(“설사 성폭력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서는 안 된다.”).
-명예훼손 역고소의 사회적 해악: 첫째, 역고소 그 자체가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와, 사건 해결을 가로막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 둘째, 피해자를 압박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위축 시키며, 향후 잠재적 피해자들까지도 침묵시키는 효과, 셋째, 성폭력 피해와 저울질할 수 있는 ‘명예훼손 피해’를 구성해냄으로써 가해자의 책임을 덜고 협상 조건을 만들어냄(“서로 고소 취하하기로 하고 합의하자.”).
-이는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 않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저항에 대한 가해자들의 ‘반격’으로서 반성폭력 운동의 많은 성과들을 후퇴시키고 있음.

(2) 여성에게 ‘명예’는 있는가?-’명예‘의 성별성
-성폭력 가해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고소하는 가해자의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명예’는 가해를 완전히 부인, 즉, 피해여성의 진술에 대한 의심과 부인을 통해서만 가능
-형사재판에서 유죄 선고 받고 역고소하는 가해자의 경우: 그들이 성폭력범임을 비밀에 부칠 때만 성립.
-두 경우 모두 ‘가해자의 명예’라는 관념은 피해자의 증언과 경험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나, 가해자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순간 이미 스스로 자기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 과정에서의 피해자 명예에 대한 훼손(책의 예시 참고)
-현실에서 가해자의 명예가 크게 훼손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명예와 남성의 명예가 동등한 의미와 중요성을 갖지 않기 때문->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명예’를 가진 주체가 아니며 여성 자신이 국가, 민족, 조직, 가족의 명예를 대표하는 기호처럼 여겨지기 때문.

(3) 역고소의 문화적 각본-‘가해자의 인권’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권의 주체인 ‘개인’은 남성이며, 여성은 ‘개인’에 미달하는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단순히 한 개인일 때는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고, ‘피해의 심각성’을 강조하거나 ‘사회적(공적)’ 문제로 공론화‘될 때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공개는 피해여성 개인의 인권 회복을 위해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행해졌을 때에만 정당화 됨.->‘인권’의 젠더화된 작동.

(4) 반(反)성폭력 운동에 대한 반격
-성폭력 가해자들의 공론화의 ‘인권 침해’ 주장은 지난 10여년 간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성과에 대한 집단적 반격.
-가해자를 ‘피해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논리: ‘여성운동 대 가해자’라는 구도를 통하여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집단적 반격 정당화.
-이는 반성폭력 운동의 힘과 취약점을 모두 보여주는 현상: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남성 특권에 대한 도전(반성폭력 운동의 급진화, 세력화 이전에는 법의 도움 없이도 피해여성을 ‘말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음)이자, 다른 한편 반성폭력 운동이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성 특권이 작동하는 담론 구조 자체의 해체에는 이르지 못함을 의미(‘공론화’는 성폭력을 공적인 문제로 주장->공·사 분리와 ‘개인’, ‘인권’, ‘명예’를 정의하는 기존의 방식에 도전하기 어려움).

2. 성폭력 피해의 객관성-‘진실’을 구성하는 성별정치학
(1) 가해자 중심 사회에서 피해를 입증한다는 것
-“정말 성폭력이 없었을까?”가 아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 제기 방식 자체의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성.
-가해자는 끝까지 부인하는 것만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끝까지 피해 사실을 말해도 결코 피해를 인정받을 수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없음.
-대다수의 가해자가 성폭력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확인”해야 성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가해자가 인정하는 것만 피해로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

(2) ‘법적인 판단’의 성별성
-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기존의 성규범이나 성역할 모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피해여성은 형사절차의 전 과정에서 불신 당한다.
-이 ‘의심받는 고통’을 기존의 틀 속에서 납득시키기 위한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의 부각의 문제점: 법의 성별적 작동 방식인 ‘보편-특수’구도를 문제화하지 않은 채, 여성의 경험을 남성의 논리에 ‘적용’하는 것.

(3)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법의 ‘보편성’에 호소하는 딜레마
-형식적으로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선언하는 자유주의 법체계 속에서, 젠더화된 폭력으로서의 성폭력은 ‘국민’외에 (보호와 시혜를 필요로 하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창조할 때에만 법과 정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여성을 (남성) 국민의 ‘보편 범주’에 대비되는 ‘보호 대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보편-특수의 구분을 재연한다(여성가족부, 여성청소년계 등의 예).
-증거나 증인이 없고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다른 범죄나 상황이 있음에도 유독 성폭력 범죄에서만 피해자 의심이 당연시되는 것은 남성의 경험을 ‘보편’으로 간주하는 권력의 효과.
-무엇을 ‘증거’로 인정하는가, 어떤 내용과 어떤 요건을 갖춘 진술을 ‘신빙성 있는 진술’로 받아들이는가 자체가 성별화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이란 남성의 경험에 입각해서 피해여성의 진술을 심문함으로써 구성됨->가해자가 ‘끝까지 강력하게 부인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이유.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폭력을 ‘특수’한 경험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의심하는 가부장제 권력을 문제화하지 않은 채, “특수하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적 판단’이 남성 권력으로 작동하는 방식인 ‘보편-특수’의 구분을 해체하기 어렵다.
-여성 피해 진술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검찰, 법원의 ‘객관성’을 문제화해야 한다.
-객관성은 권력의 성격이 아니라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기술이기 때문에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대응은, 피해여성의 경험이 객관적이라는 주장보다는 성폭력에 대한 남성의 객관성이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이 좀 더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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