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11-10-21] 대한민국 남성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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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3주년 특집 인터뷰 | 대한민국 남성 페미니스트

“여성문제는 모든 인류의 고민, 그래서 나섰다”

여성에게 특별히 편파적인 남성들,

여성운동을 통해 더 자유로워졌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혁명가이자 ‘착한’ 남자들. 여성운동 하는 남자들은 분명 남성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단아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와 같다. 여성에게 편파적인 이들은 “남자가 왜 여자들 틈에 있어?!”라는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당당하고 자유로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다. 여성신문은 창간 23주년을 맞아 남매애를 보여준 4명의 남자를 만났다. 인터뷰는 17일 여성신문 편집국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한국여성재단 박병헌(40) 기획홍보팀 과장을 만나면 사람들은 “혹시 그 금박병헌씨예요?”라고 묻는다. 맞다, 금박씨. 10년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첫 남성 상근활동가로 화제를 낳은 바로 그 남자다.

 

그가 여성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4년. “대학 졸업반 때 친구 따라 성폭력상담소에 간 김에 교육을 받았어요. 여성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확 꽂혀 그냥 넘어갈 수 없었어요. 이후 7년간 야간 상담원으로 일했죠.” 당시 상담일을 하던 아내(방영옥씨)를 만나 연애했으니 여성운동 한 것이 또 다른 행운 아닐까. 그가 여성운동 하는 남자가 되면서 친구들의 술 문화도 달라졌다. 여자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던 친구들이 이젠 건전(?)해졌다. “여성운동이 위기라고요? 큰 어젠다가 없어 덜 역동적으로 보일 뿐 오히려 일상에 결합한 네트워크는 굉장히 많아졌어요.”

 

대안달거리대 쓰기운동을 벌이는 피자매연대 상근활동가 조약골(38)씨. 외모부터 심상치 않다. 왼쪽 귀에 귀고리, 코에 피어싱을 하고 긴 머리는 어깨를 넘어 찰랑댔다. “‘월경운동을 왜 남자가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요. 우문 아닌가요? 인류 절반의 일인 여성문제는 모든 인류의 고민이죠. 되레 제가 생리공결제에 대해 강연하면 남자들에게 잘 먹히던 걸요(웃음).”

 

조약골은 스스로 바꾼 본명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약골’임을 드러내 작은 파열구를 내고 싶었어요. 언뜻 조약돌로 들리지 않나요?(웃음)” 그는 한국판 슬럿워크(slut walk)인 ‘잡년행진’을 공동 기획했다. 지금은 제주도에 집을 구해 내려가 있다. 강정마을 연대활동을 위해서다. 인터뷰 하루 전날에는 서울여성회 주최 ‘피임이 빛나는 밤에’ 축제에서 기타를 메고 공연을 펼쳤다. 그는 비혼주의자다.

 

서울대가 여성학협동과정을 개설한 후 처음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필식(34)씨는 여성환경연대 열성 회원이다. 지난 5년간 “남자들이 좀 와줬으면…” 싶은 행사마다 어김없이 응원하러 온 ‘홍반장’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을 하고 있어요. 캔들나이트, 도시 골목길 산책 등 여성의 관점을 갖되 남성들이 참가할 만한 행사를 많이 해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에코페미니즘’ 논문으로 석사를 마친 그가 여성학 박사 코스에 들어가자 주변에선 “어∼” 하는 분위기였다. “여자 공부하는 박사가 되려는 거냐”는 비아냥거림 섞인 눈빛을 받기도 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아울러 파고드는 양성학을 연구하고 싶어요.”

 

자전거를 끌고 인터뷰장에 나타난 이 남자, 역시 젊다.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나은(31·본명 문성훈)씨. 본부와 9개 지역민우회를 통틀어 유일한 남자다. 그는 군대에서 페미니즘에 빠졌다. 남성위계질서에서 “왜 마초문화, 마초의식이 생길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제대 후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 사업을 하면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았고 지난해 민우회 공채로 들어왔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뜻을 담아 별칭을 ‘나은’으로 지었다.

 

“민우회는 상임대표도 별칭 ‘멍군’으로 불러요.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편안해요. 여성단체에서 일한다면 ‘무거운 물건 다 들겠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실제 힘쓸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무거운 건 나눠 들고, 카트에 실어 옮기면 되지요.” 그는 “여성들의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잘 엮고 소통해야 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 왼쪽부터 박병헌, 조약골, 나은, 신필식씨. ©장철영 기자

‘대한민국 남성 페미니스트’

 

박병헌

 

“인권운동이 진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마이너리티인 여성 인권을 높이는 여성운동이 곧 인권운동이기 때문이다. 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 서울YMCA에 있다가 2000∼2002년 여성연합 최초의 상근 남성 활동가로 ‘활약’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1월부터 한국여성재단에서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조약골

 

2003년 피자매연대를 창립했다. 반전평화운동을 하다 외국인 친구로부터 대안 월경용품이 있다는 걸 전해 듣곤 대안달거리대운동에 나섰다. 평택 대추리, 새만금, 용산, 홍대 앞 두리반…. 농성장에서 들리는 그의 노래는 사람들을 부른다. ‘운동권 셀레브리티-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나키스트’(텍스트)를 최근 냈다.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 상을 받았다.

 

신필식

 

여성환경연대가 강력 추천한 열성파 남성 회원. 환경건강팀 모니터링 회의, 상근자들과 꾸린 책 읽기 모임 활동에 열심이다. 스웨덴에서 입양아들을 만난 후 여성학 박사 코스에 들어갔다. “1000만 명(인구) vs 1만 명(한국인 입양아)’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자 한국 여성의 열악한 지위가 한눈에 보였다. 4세 아들, 돌잡이 딸을 둔 기혼남.

 

나은

 

대학 졸업 후 뒤늦게 간 군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마초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페미니즘을 떠올렸다. 제대 후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 사업을 1년간 했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를 대체하는 친환경 운동”이라는 설명. 여성민우회 청일점 활동가답게 여성들과의 소통에 능하다. 친구 비율이 8대 2로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단다. 비혼.

 

1156호 [특집/기획] (2011-10-21)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mus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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